우리 삶의 편도 티켓, 디지털 노마드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 한국, 2017

김남훈


자유 혹은 떠도는 삶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가 1997년 ‘21세기 사전’에 확장된 인터넷 네트워크와 노트북과 같은 휴대용 업무도구 등을 이용해 장소에 한정되지 않고 여기저기 이동하며 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뜻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당시 이 용어는 미래사회를 예견하는 하나의 개념적인 언어였다면,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스마트폰의 등장과 무선 인터넷 등 IT 환경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디지털 노마드’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완벽한 현실이 되었다.  

영화 ‘원 웨이 티켓’은 편도승차권이라는 제목의 뜻처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며 일하고 살아가는 디지털 유목민들의 삶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 사뭇 다른 전개방식을 취하는데, 특정한 주인공 없이 여러 디지털 유목인들을 인터뷰해 그 다채로운 생각과 삶의 방식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디지털 노마드’의 개념을 이해하는 여러 논쟁적이고 사회적인 시각들을 숨김없이 꺼내 하나하나씩 설명하고 있다. 작품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거나 평가하기 어려운 정보 중심의 전개 방식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접근 방식에 담긴 감독의 의도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영화의 장면의 다수는 방송용 규격인 29.97fps(1초당 화면 수)로 촬영되었고 최종적으로 마스터링된 상영본 역시 29.97fps이며 러닝타임은 1시간이 조금 넘는다. 처음부터 이 작품은 영화의 완성도 또는 배급방식을 고려하기보다 유튜브 등 다양한 멀티채널에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든 도유진 감독은 이 작품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서 공동체상영(Community Screening)하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며 온라인 상영도 고려하고 있다. 

스스로 ‘디지털 노마드’이기도 한 도유진 감독의 이러한 접근 방식에는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디지털 노마드’가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디지털 노마드’의 실체적인 현실을 묘사하고자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 디지털 노마드가 이미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삶의 방식임을 전제하고, 그런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을 함축적으로 요약해 핵심적 요소를 전개하면서 영화라는 형식적 가치를 과감히 제거해버렸다. 그럼에도 한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 효율적으로 편집된 다양한 이야기들은 지루하거나 무의미하지 않으며, 이 영화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정확하게 선점해내고 있다. 




동경하는 ‘디지털 노마드’

내가 일하는 ‘모두를위한극장(이하 모극장)’은 협동조합이다. 조합원의 다수는 비상근으로 프로젝트에 따라 팀이 결성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해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종류의 갈등이 유발되는데, 그 중 하나는 업무 장소 또는 회의 장소나 시간에 관한 문제들이다. 조합원들 중 상시적인 일이 없는 사람들은 보다 분방한 형태의 업무 방식을 선호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이야기가 소소하게나마 논의되었다. 모극장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주로 이 방식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데, 이는 재택근무 또는 탄력적 근무시간에 대해 갖고 있는 막연한 불안심리와 초기에 발생하게 될 소통에 대한 에너지 낭비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뿐 아니라 다른 기업 또는 조직에서도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는 사회적으로 동경 혹은 우려의 대상이며 이는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보다 자유로운 일 예컨대 작가, 예술가, 1인 기업가, 프로그래머 등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상식적으로 해당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다수 등장한다. 심지어는 회사에서 재택근무나 탄력적인 업무시간을 권장해 어쩔 수 없이 디지털 유목민이 된 사람도 있다. 다양한 이유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대체로 이들은 행복해 보인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신뢰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들은 적어도 그러한 안전망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1시간의 러닝타임 중, 초반 40분은 이들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얻게 된 긍정적인 변화와 동경하는 삶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유유자적 한가로운 이미지에 대해서 영화 속 이들은 정말 “그렇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중 인상적인 인물들은 ‘디지털 노마드’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되는 직종의 사람들이다. 미국의 변호사 노부부라든가, 디지털 노마드로 곳곳을 여행을 다니는 중에 두 명의 자녀를 출산한 부부, 여행 중에 만나 사귀게 된 디지털 노마드 커플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선택에 따르는 특수한 책임을 져야만 하는데, 변호사 부부의 경우는 클라이언트와 직접 대면할 수 없으므로 그들이 불안해하거나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솔루션을 개발해내기도 했고, 아시아를 여행하는 미국이나 유럽권의 노마드들은 회사의 화상미팅 시간을 지키기 위해 잠을 설쳐야만 한다.

디지털 노마드가 증가하면서 ‘노마드리스트(nomadlist.com)’라는 플랫폼이 등장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태국의 코워킹스페이스 운영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게스트하우스가 디지털 노마드의 메카가 된 사실을 흥미롭게 여기기도 한다.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선상 컨퍼런스, 다양한 직종 간의 네트워킹과 코워킹 플페이스(협업 공간), 리모트 컴퍼니(원격근무를 시행하는 회사) 등 우리가 상상하던 것들은 상상 그 이상의 현실로 이미 구현되어 있었다.




의심하는 ‘디지털 노마드’

영화를 보면서, 언제까지 저렇게 혹세무민 낭만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나 한번 지켜보자 싶던 시간은 러닝타임 40분을 넘어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역시 우리가 우려하거나 의심하던 것 이상의 현실적인 문제로서 제기되는 낯선 이야기들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는 시간동안 어느 특정한 국가나 사회의 규범과 질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들은 역설적으로 사회적 보호와 권리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자택근무 등 일반적 잣대에서 염려해온 현상들은 오히려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의 발전이 이뤄지지만, 이러한 가운데에서 발생되는 개인의 문제들은 미처 생각해보기 어려웠다. 감독은 각각 개인의 이야기에 사회적인 초점을 맞추고 미처 몰랐던 그 문제들을 제기해간다.

태국 치앙마이는 ‘디지털 노마드’가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인데, 이들은 이곳에 장기간 체류하기 위해 불법적 형태의 비자세탁이나 탈세 등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는 각 국가의 여권이 서로 다른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장기간 체류하는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현실적인 제도가 없어서 벌어진 현상이다.

그리고 디지털 노마드의 수가 증가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사기 행위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회적 외부인으로서 디지털 노마드는 자신이 체류하고 있는 국가에 소속감도, 의무감도 잘 느끼지 못한다. 특히 이들은 공통적으로 외로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데,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일회적이고 상업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동남아의 섹스 산업은 디지털 노마드와 유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현지인들은 이러한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불만과 악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감독은 그들 사이에서도 잘 드러내지 않았던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다루면서 제작기간 동안 일부 디지털 노마드로부터 비난을 듣거나 협박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감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디지털 노마드를 위하는 별도의 비자, 체류 지역에서의 납세의무 등의 제도적 해결책과 개인적 차원에서 조절해야 하는 문제들을 인터뷰이들의 입을 빌려 다각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 삶의 편도 티켓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안착되기를 요구받는다. 기존의 모든 질서는 이러한 욕망을 위해 편성되어 있다. 안정적인 일과 보상, 항구적인 집과 가족을 이루는 일은 사회 보편적 가치이며 사회와 국가는 이러한 가치 위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 역시 결국 다수는 어딘가에 안착하거나 돌아와야 하는 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여행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사회는 분명 기존의 가치와 다르게 발전해간다. 우리가 디지털 노마드를 상상하며 의심할 때, 그것을 작동시키는 공동체라는 내적 가치는 사실 ‘디지털’이라는 환경 안에서 많은 충돌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으로 야기되는 여러 사회적 논쟁을 비롯하여 우리에게 요구되었던 기술적 혁신과 변화는 최초의 목적과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길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그 길 위에 올라서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가 과연 보편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인지 예견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선택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개인들이 길 위에서 목격한 또 다른 사회의 모습은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공동체 가치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 영화는 한 사회에서 집단적으로 요구된 기술발전이라는 목표가 ‘디지털 노마드’라는 새로운 개인의 욕망을 만들어냈고, 이렇게 집결된 욕망이 다시 사회적 현실로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여러 인터뷰이들의 증언과 삶을 통해 관객들에게 묻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토론해볼 만한 여지를 품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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